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헤쳐가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체제를 만든 나라에서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정권 연장을 위한 비상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자 혼란속에 있다. 이런 시국이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서 예외일 수 있겠는가? 당장 올해 사업계획 수립도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와 부정에 항거했던 국민들의 피와 눈물로 쟁취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에서 그 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는 4.19 의거, 박정희의 독재 시절 계속된 투쟁, 그리고 12.12 쿠데타 이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 하지만 위의 시기동안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의 저항은 극소수의 깨어 있는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2016년 서울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응원봉 집회로 이어지며 과거 독재의 망령이 오늘날 부활하는 것을 개별적인 의지로 모인 수많은 시민들의 힘으로 막아내고 있다.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는 신간 ‘넥서스’에서 인류의 역사와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중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정치 사회의 정보 흐름과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유발 하라리는 모든 사회에서 정보의 생성과 확산, 공유가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와 독재 사회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정보가 여러 주체에 의해 생성되고 이들 정보가 아래계층에서 위로 자연스럽게 유통되지만 독재 사회에서는 국가에 의해 통제된 소수의 주체만이 정보를 생성하고 유통하며 모든 정보는 권력의 통제 하에 관리된다. 대한민국이 독재정권 시절 소수의 조직만이 활동하였던 이유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통제된 정보만을 제공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정권이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채널의 정보 유통 체계가 등장하였고 정보의 제공 역시 일부 기득권 언론이 아닌 수많은 정보 공급자가 등장하였다. 2010년경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아랍 지역의 민주화 투쟁, 소위 ‘아랍의 봄’에서 트위터등의 SNS가 민주화 혁명의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2024년 12월 3일에 있었던 비상계엄 선포 역시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확산된 동영상 미디어 및 SNS를 이용한 발 빠른 시민들의 대응으로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이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시도 세력의 의도 중에는 레거시 언론 미디어가 아닌 한 유튜브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봐도 민주주의에서 IT에 기반한 SNS 및 정보 유통 인프라의 역할 및 중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에 IT 기술은 긍정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일까? 날카로운 칼이 요리사의 손에 있으면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도구가 되지만 범죄자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헤치는 흉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IT 기술은 권력이 정보를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왜곡된 정보와 가짜 뉴스, 갈등의 조장 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주말마다 광장에서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와 정치 수준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간, 인종간,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고 특정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독재 정권과 민주주의에서의 정보 생성 및 유통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자정 기능, 즉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정하는 기능의 동작 여부라고 했다. 독재 정권에서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중심으로 권한을 가진 소수 미디어가 이를 독점하고 공급하면서 세상을 왜곡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다양한 계층에서 정보를 생성하고 공유하면서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거짓과 왜곡을 걸러내고 진실을 검증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이 동작한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이뤄낸 성과를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수십년전 과거의 수준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의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IT강국 대한민국의 IT 기반 정보 생성, 유통 체계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자정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널리 공유하는 정보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검증할 수는 있도록 되어 있는가? 정보의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메신저, 포털 및 동영상 미디어 플랫폼 기업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어쩌면 미래 사회에서 IT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에 활용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인류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과 욕망으로 인해 여전히 시끄럽고 혼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인류 사회의 발전에 근본적으로 기여해왔듯 IT 기술도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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