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높은 리더의 숨은 무기··· ‘자기 훈련으로서의 글쓰기’
필자는 천체물리학과 학계, 국가 안보 정보기관,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의 제품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능한 사상가, 분석가, 실무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어왔다. 그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성공하는 인물이 반드시 카리스마 넘치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습관을 기르지 못해 스스로를 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글쓰기라는 자기 훈련이다.
알고 있는 뛰어난 리더와 실무자들은 모두 글쓰기를 일상의 훈련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자신의 사고를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시험하며, 외부의 비판과 개선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기 위해 글을 쓴다.
AI가 반복적인 지식 업무를 자동화하는 지금, 사람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한정된 인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를 AI와 결합해 사고력을 강화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글쓰기는 사람이 가진 도구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여전히 저평가되는 수단이다.
뇌의 숨은 병목
우리의 뇌가 제한된 하드웨어 위에서 작동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인간 기억의 3가지 핵심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1. 단기 기억: 정신의 클립보드
단기 기억은 임시 저장 공간이다. 전화번호, 새로운 이름, 짧은 문장과 같은 정보를 몇 초에서 1분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보강되지 않으면 금세 사라지는 취약한 구조를 지닌다.
심리학자 조지 A. 밀러는 1956년 논문에서, 인간이 한 번에 유지할 수 있는 정보의 수는 평균 7±2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 장기 기억: 방대하지만 혼란스러운 저장소
장기 기억은 장기적으로 정보를 보관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단순히 사실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저장한다.
즉, 원시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드디스크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는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을 의미 있는 단위로 끊임없이 압축한다. 이 과정은 학습과 회상 속도를 높이는 데 유용하지만, 기억이 왜곡되거나 불완전해질 위험을 동반한다.
프레데릭 바틀렛은 고전이 된 1932년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의 민담을 기억하도록 요청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가자들은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세부사항을 왜곡하거나 생략했고, 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바틀렛은 기억이란 스키마(schema), 즉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인지 프레임워크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억은 사실을 그대로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당시에 이해한 방식대로 정보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정확성이 아니라 의미 중심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또한 사람의 기억은 정돈된 서류함처럼 깔끔하게 저장된 구조가 아니라, 경험과 의미에 따라 연결된 연상 그물망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어떤 냄새가 10년 전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명령이 아니라 단서에 의해 작동한다.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그렇게 연결된 아이디어가 개인적 의미에 따라 활성화된다. 이때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연상의 실마리를 따라가며 그 연결고리를 가시화하는 도구가 된다.
3. 작업 기억: 정신의 좁은 작업 공간
작업 기억은 사고가 실제로 이뤄지는 공간이다. 이는 짧은 시간 내에 보고 듣고 읽은 단기 기억의 일부를 장기 기억의 조각난 정보와 결합해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대부분의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며, 뇌는 실시간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조율하고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러나 작업 기억의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한 번에 4~7개의 정보만 작업 기억에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장기 기억에서 끌어온 정보조차 왜곡된 인상, 잊힌 세부사항, 내재된 편향 같은 문제를 동반한다.
문제는 작업 기억이 작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중요한 사고를 할 때 이 공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작업 기억은 한 번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겨우 담을 수 있는 공간에 단기 기억에서 유입된 휘발성 정보와, 장기 기억에 저장된 불완전하고 편향된 내용을 통합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제한적이고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작업 기억을 지원하고 확장할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단지 생각이 그럴싸하게 굴러가는 것을 사고의 질이 높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일관돼 보이는 착각
작업 기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람은 종종 익숙한 이야기와 가설을 우선시하는 정신적 지름길을 택한다. 이로 인해 사고는 철저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검증되지 않은 믿음에 갇히는 ‘착각(illusion of coherence)’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의 마지노선(Maginot Line) 의존이다.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구축된 이 대규모 방어선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술이 반복될 것이라는 프랑스의 기대치를 상징했다. 그러나 1940년 독일군은 아르덴 숲을 통해 우회 침공했고, 프랑스는 순식간에 함락됐다.
“마지노선은 공학의 승리이자 사고의 실패였다.” – 어니스트 R. 메이, 『기이한 승리: 히틀러의 프랑스 정복』
이 사례는 검토되지 않은 사고의 틀이 전략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고에 도전하고 검증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면 과도한 자신감, 맹점, 그리고 잘못된 판단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사고를 확장하는 글쓰기
글쓰기가 핵심 도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쓰기는 매우 협소한 작업 기억의 한계를 확장한다. 생각을 외부로 표출함으로써, 머릿속에서 모든 아이디어를 동시에 다루지 않아도 되게끔 한다. 글로 정리된 사고는 한 발 물러나 전체를 조망하고, 뇌만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를 다룰 수 있도록 돕는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전설적인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무언가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로 쓰거나 남에게 가르쳐야 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누군가 그의 노트를 가리켜 “하루하루의 작업이 잘 기록돼 있다”라고 말하자, 그는 “이건 내 생각 과정을 기록한 게 아니다. 그 자체가 내 생각 과정이다. 나는 실제로 종이 위에서 사고를 했다”라고 답했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구축하고, 검증하며, 발전시키는 도구다. 초안을 쓰고 수정하는 과정은 글의 논리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고 체계까지 함께 정제한다.
리드하는 글쓰기, 승리하는 글쓰기
보다 명확하게 사고하고, 효과적으로 글을 쓰고,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와 사고의 틀이 있다. 그중 하나는 리처드 J. 호이어의 『정보 분석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Intelligence Analysis)』이다. 이 책은 본래 정보 분석가를 위한 교재지만, 가설에 도전하고, 편향을 피하며, 구조화된 분석 기술을 적용하는 실전 전략을 담고 있다. 이는 모든 사려 깊은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또한 다니엘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사람이 가진 정신적 맹점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이 책은 빠르고 직관적인 판단과 느리고 신중한 추론이라는 2가지 사고 체계를 다룬다. 빠른 사고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확증 편향과 일관돼 보이는 착각 같은 익숙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글쓰기는 사고의 속도를 늦추고, 더 깊이 있는 분석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AI가 반복적인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에도 사람의 명확하고 깊이 있는 사고는 여전히 중요한 경쟁력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를 실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운영자, 분석가, CISO 등 어느 자리에 있든 보다 효과적으로 업무를 이끌고 싶다면 단지 더 많이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조용히 펜을키보드를 들고, 더 많이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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